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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관문성 산성 성벽에서 지금까지 10점의 명문석이 발견되었다. 자세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722년 이전의 통일 초기라는 것은 틀림없다. 명문석에는 축조를 담당한 지역명, 담당한 성벽의 경계를 나타내는 “南界” 또는 “北界”, 담당한 성벽의 “受地” 거리가 적혀 있다. 지방에서 축성을 담당한 단위는 기본적으로 다 군이었다고 생각된다. 제1, 2석의 “骨估” 및 제2석의 “熊”은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현으로 되어 있지만, 통일 초기에는 군이었다고 추측된다. 성벽 구역을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보면 담당한 군의 위치가 지리적으로 시계방향 순서라는 관계가 있다. 축성을 위해 군 단위로 전국에서 동원되었고, 각 군의 동원 규모는 호구수 등에 따라 정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금경의 담당 단위에 대해 종래 부 밑의 里거나 식읍주, 귀족 등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명문석의 내용과 성벽 담당 구역을 통해서 금경이 6~7개 구역을 담당하였다고 생각되어 6기정의 전신인 6개 정이었다고 추정된다. 특수한 군사적 행정구역이었던 정이 지방의 군과 같이 축성을 담당한 것이다. 또한, 6개 정의 각 축성거리가 같았으므로 인위적으로 설정된 행정구역이었다고 추정된다. 정에 주둔한 부대가 축성에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관문성 명문석은 통일 초기의 지방이나 왕경 주변 지배 체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고 평가할 수 있다.
키워드
관문성; 명문석; 역역 동원; 지방 지배; 군; 6기정; 금경; Gwanmun Fortress (關門城); inscription stones; mobilization system; local governance; gun (郡); 6 gijong (畿停); gumgyong (金京)
- 제목
- 관문성 명문석과 신라의 역역 동원 체제
- 제목 (타언어)
- The Mobilization System of Silla and the Inscription Stones of Gwanmun Fortress (關門城)
- 저자
- HASHIMOTO Shigeru
- 발행일
- 2023-06
- 유형
- Y
- 저널명
- 신라문화
- 권
- 62
- 페이지
- 189 ~ 212
- 언어
- KOR
- 출판사
- 동국대학교 WISE(와이즈)캠퍼스 신라문화연구소
- 발행국가
- 대한민국
- 분량
- 24 페이지
- ISSN
- E 2714-0628
P 1229-0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