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탐라에서 고려의 제주로 - 13~14세기 탐라 관할권의 변화와 그 원인 -

From Tamra(耽羅) of the Mongol(Yuan) to Jeju(濟州) of the Goryeo : Changes and Causes of Tamra Jurisdiction in the 13th and 14th centuries

초록

본고에서는 13-14세기 탐라와 고려, 몽골과 고려 관계를 바탕으로 탐라와 고려, 몽골과의 관계 및 탐라에 대한 관할 방식의 변화와 그 원인을 살펴보았다. 고립된 섬이라는 지정학적 제약으로, 탐라국은 정치적 지위의 안정과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12세기 이래 자청하여 고려의 군현체계에 편입되었다. ‘耽羅’라는 국호와 國主(星主)의 존속이 반영하듯이, 탐라는 줄곧 고유의 정치체를 유지했고, 실질적으로 양자의 관계는 小國과 大國 간의 事大, 책봉-조공관계였다. 몽골이 동아시아의 새로운 패자가 되고, 쿠빌라이가 대외전쟁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1267년 탐라국 星主는 고려를 통해 대칸 쿠빌라이를 알현하였다. 기존의 ‘탐라(星主)―고려(國王)’ 관계는 ‘탐라(星主)―고려(國王)―몽골(皇帝)’로 변모되었다. 쿠빌라이는 고려와 탐라를 자신의 전쟁에 동원하는데, 단 몽골의 탐라에 대한 일체의 명령은 고려를 거쳤다. 1272년 원종은 쿠빌라이에게 탐라를 거점으로 삼은 삼별초의 토벌을 간청하였고(‘請討耽羅’), 1273년 여몽연합군이 탐라의 무신 세력을 진압한 이후 1275년부터 탐라에는 원의 관부가 설치되었다. 탐라는 여전히 國으로서 유지되었는데 ‘탐라(星主)―고려(國王)―몽골(皇帝)’ 관계는 ‘탐라(星主)―몽골(皇帝)’ 관계로 변모되고 고려는 탐라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1294년 쿠빌라이 사후, 성종 테무르는 충렬왕의 요청을 수락하여 탐라를 고려에 돌려주는데(歸高麗, 還隷, 還屬高麗), 그 실질적 의미는 1275년 이전의 ‘탐라(星主)―고려(國王)―몽골(皇帝)’ 관계로 환원되는 것이었다. 고려는 다시 탐라에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충선왕과 공주의 불화, 충선왕의 폐위, 충렬왕과 충선왕의 갈등 사태 직후, 1300년 원 조정에서는 탐라에 총관부를 설치하였다. 이는 ‘탐라(星主)―몽골(皇帝)’ 구도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1301년 충렬왕은 성종에게 총관부를 폐지하고 고려에 속하는 만호부를 開置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여 재가를 얻었다. 고려 국왕은 정동행성의 승상 자격으로 만호부를 통해 탐라를 관할하게 되어 ‘탐라(星主)―정동행성[만호부]―몽골(皇帝)’의 구도로 개편되었다. 1370년 공민왕은 명나라 연호를 사용하고, 사신을 명에 보내 탐라에 관한 일체는 고려가 관할하고 말을 바칠 것을 제안하였다. 이로써 몽골이 제외되고 ‘탐라―고려―명’의 구도가 설정되었다. 1372년 공민왕은 홍무제에게 탐라의 몽골 유민(牧胡)을 토벌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請討耽羅’). 100년 전 쿠빌라이가 원종의 요청에 응한데 반해 홍무제는 공민왕의 요청에 응하지 않고 고려가 토벌할 것을 명령했다. 1374년 8월, 최영이 이끄는 2만5천 여의 고려 군대가 수행한 탐라 戰役은 탐라국이 고려의 제주, 현재의 제주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키워드

Tamra Kingdom; Mongol(Yuan); Goryeo; Kubilai; Sambyulcho; Zhengdong xingsheng; Manho-bu; King gongmin; Emperor Hong-Wu; Tamra expedition; Jeju Island; 탐라(국); 몽골(원); 고려; 원종; 쿠빌라이; 삼별초; 정동행성; 만호부; 공민왕; 홍무제; 탐라 원정; 제주
제목
몽골의 탐라에서 고려의 제주로 - 13~14세기 탐라 관할권의 변화와 그 원인 -
제목 (타언어)
From Tamra(耽羅) of the Mongol(Yuan) to Jeju(濟州) of the Goryeo : Changes and Causes of Tamra Jurisdiction in the 13th and 14th centuries
저자
최윤정
발행일
2024-02
유형
Y
저널명
대구사학
권
154
페이지
209 ~ 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