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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정조대 斥邪論者들의 척사 활동을 평가한 후대 인물들은 그러한 평가를 통해 선대 인물들의 학문․정치․사회적 명분을 강화하고자 하였고, 나아가 그들이 활동하고 있던 시대적 상황에서 척사의 기치를 더욱 높이고자 하였다. 近畿南人 학자이자, 星湖學派의 핵심 인물인 安鼎福과 李森煥에 대해서는 문인 黃德吉과 손자 李是鉷이 행장을 작성하여 그들의 척사 활동을 평가하였다. 황덕길과 이시홍은 안정복과 이삼환이 척사 논저를 저술하여 天主敎의 교리를 철저히 비판하였음을 부각시켰다. 척사 활동이 해당 인물의 학문적 태도를 설명하는 하나의 주요한 기준이자 근거로 활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老論 洛論의 趙有善을 포증할 때에도 그의 척사 활동이 주요 근거로 제시되었다. 유생들은 조유선을 포증해야 하는 근거로 그의 척사 활동을 들었고, 洪直弼이 작성한 조유선의 묘지명에서도 조유선이 척사를 주장한 행적을 칭송하고 있었다. 이처럼 그의 포증을 청할 때에는 언제나 이러한 행적이 기억되고 활용되었다. 관료 혹은 정치적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을 평가하는 데에도 척사 활동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攻西派 근기남인의 대표적인 인물인 姜浚欽은 신도비명을 통해 그의 정치적 동료인 睦萬中의 척사 활동을 부각시켰다. 공서파 근기남인의 경우에는 천주교를 가까이한 親西派 근기남인과 달리 앞으로의 정치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한 정치 명분에 혐의가 될 것이 없음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론 時派 尹行恁의 행적에서도 척사 활동이 언급된다. 辛酉迫害 당시 僻派는 윤행임이 친서파 근기남인을 극력 비호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척사의 분위기에 매우 배치되는 것이었으므로 그의 아들 尹定鉉은 윤행임이 결코 천주교와 친서파 근기남인을 비호한 적이 없음을 명백히 하였다. 사회적으로 척사 활동을 전개한 인물로는 趙常本이 있다.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宋秉璿이 조상본의 묘표를 작성하였는데, 송병선은 조상본이 사학을 배척하고 정학을 지킨 것에는 발본색원하는 힘과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하면서 조상본의 행적을 부각시켰다. 이는 19세기에 들어와 천주교가 더욱 번성하게 된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송병선은 천주교가 더욱 확산되고 있던 19세기의 현실 속에서 조상본의 척사 활동을 강조함으로써 그를 척사의 모범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키워드
- 제목
- 정조대 척사론자들의 활동과 후대의 평가
- 제목 (타언어)
- Activities of Cheoksaron members in the King Jeongjo’s reign and the later assessment
- 저자
- 최우혁
- 발행일
- 2022-09
- 유형
- Y
- 저널명
- 조선시대사학보
- 호
- 102
- 페이지
- 181 ~ 210
- 언어
- KOR
- 출판사
- 조선시대사학회
- 발행국가
- 대한민국
- 분량
- 30 페이지
- ISSN
- E 2765-5393
P 1226-5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