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9세기 병산서원 노비의 존재양상

Slaves’ Mode of Existence at Byeongsan Seowon(屛山書院) from the 17th to the 19th Century
  • 김영나

초록

본 논문은 17~19세기 병산서원 노비안을 중심으로 서원노비의 규모, 나이와 신공, 혼인과 가족, 거주 지역 등을 밝히고자 하였다. 병산서원 설립 초기에 몇 명의 노비가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1663년 노비안을 통해 풍악서당의 노비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17세기에는 100여 명에서 150명 가까운 노비들이 있었고, 18세기에는 207명까지 증가하였다가 19세기에는 66명으로 줄어들었다. 나이를 확인할 수 있는 노비 중에서 17세기에는 1~10세, 21~30세의 비중이 높고, 18세기에는 壯 연령층의 노비 분포가 비슷하였으며, 19세기에는 老 연령층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병산서원 노비는 돈, 종이, 돗자리 등의 물품을 신공으로 납부하였다. 병산서원 노비의 혼인은 원비와 미상의 혼인이 가장 많았다. 17세기에는 이 혼인뿐만 아니라 원비와 사노, 원비와 양인, 원노와 양녀의 혼인과 이들의 자녀들이 많았고, 18세기에는 원비와 미상의 혼인 비중이 더 높아졌다. 19세기에는 원비와 미상의 혼인만 나온다. 서원노비는 누구에게도 상속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의 가계는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병산서원 노비들은 서원 근처와 안동, 경상도 북부 지역에 주로 거주하였다가 강원도와 충청도 등으로 확장되었다. 18세기 중반에 가장 많은 지역에 노비가 거주하다가 19세기에 다시 서원 근처를 중심으로 거주 지역이 축소되었다. 이것은 서원의 경제적 기반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함이었다. 지금까지 17~19세기 병산서원 노비의 나이와 신공, 혼인과 가족,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서원노비의 존재양상과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서원의 운영기반 중 하나인 서원노비의 성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키워드

병산서원; 서원노비; 노비안; 신역; 신공; 혼인; 가족; 거주 지역; Byeongsan Seowon(屛山書院); Slaves(奴婢); Slave register (奴婢案); physical labor(身役); Labor exemption fees(身貢); Marriage; Family; Residential areas.
제목
17~19세기 병산서원 노비의 존재양상
제목 (타언어)
Slaves’ Mode of Existence at Byeongsan Seowon(屛山書院) from the 17th to the 19th Century
저자
김영나
발행일
2021-06
유형
Y
저널명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권
67
호
67
페이지
149 ~ 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