尙州 淵嶽書院과 九曲文化

A study on the private school of Yeonak and the Nine rolling Valley of Yeonak in Sangju
  • 이구의

초록

이 논문에서는 상주 연악서원(淵嶽書院)과 연악문회(淵嶽文會), 연악구곡(淵嶽九曲)에 대하여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552년 영천(靈川) 신잠(申潛)이 상주 목사로 부임하여 지천서당(智川書堂)을 비롯하여 18곳에 서당을 건립하여 상주의 교육을 일으켜 많은 선비를 배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이 서당이 불타버리자 1702년(숙종 28)에 지방 유림의 공의(公議)로 서원을 창건하였는데 이 서원이 바로 연악서원이다. 1622년 5월 25일부터 연악서재(淵嶽書齋)에서 15명의 선비들이 4박 5일 동안 연악문회에서 남긴 시문집이다. 이 책은 상산(商山)에서 나온 공동시집으로서는 최초이다.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전반에 걸쳐 살던 상주의 선비들이 문회(文會)를 열어 당시 상주의 문화를 크게 진작시켰다. 연악구곡(淵嶽九曲)은 남계(南溪) 강응철(姜應哲, 1562~1635)이 상주시 청리면 지천동(智川洞)에 설정하고 경영했던 구곡원림(九曲園林)이다. 연악구곡이라는 이름을 붙인 시기는 1598년부터 1608년까지라 단정할 수 있다. 연악구곡에 대하여 읊은 시에는 자연의 좋은 경치와 아울러 그들의 학문과 풍류를 겸하고 있음을 직, 간접적으로 드러나 있다. 학문하는 선비들이 단지 학문만 한 것이 아니라, 자연을 완상하면서 이를 즐길 줄 알았다. 연악서원이 자리 잡은 곳에 연악구곡이 있어 이를 겸하기에 아주 적합하였다. 16세기 중반 이후로 이곳, 상주(尙州) 청리(靑里) 지천(智川)을 중심으로 학문과 문학을 겸하는 선비가 많이 배출되었다. 16세기부터 이곳을 중심으로 학문과 문학이 발달한 것은 다음 몇 가지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이 당시에 이 지역에서 훌륭한 목민관을 만나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당시에 이곳이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점이다. 셋째 이곳은 유서 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넷째 이곳은 교통의 요충지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몇 가지 이유로 16세기부터 이 연악을 중심으로 인재가 배출되었고, 학문과 문학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키워드

연악(淵嶽); 서원(書院); 시회(詩會); 구곡(九曲); 인재(人才); 학문(學問); Yeonak; Private school; Meeting of writers; Nine rolling Valley; Talent; Scholarship
제목
尙州 淵嶽書院과 九曲文化
제목 (타언어)
A study on the private school of Yeonak and the Nine rolling Valley of Yeonak in Sangju
저자
이구의
DOI
10.15186/ikc.2022.08.31.06
발행일
2022-08
유형
Y
저널명
민족문화논총
호
81
페이지
197 ~ 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