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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초기에는 원나라를 정통을 인정하고 원나라의 치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이는 고려말에 도입된 원대 성리학의 영향, 고려말 지식인들이 가지고있던 형세 중심의 화이관, 세종대 용하변이 강조 등 때문이었다. 성종대에는 남송대 주자학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나타났고, 호안국의 『춘추호씨전』이주목받기 시작하였다. 남송대 주희와 호안국으로 대표되는 종족 중심의 화이관과정통론은조선성종,중종대를거치면서지식인들에게확산되었으며,이를바탕으로 선조대 김우옹의『속강목』, 정구의『역대기년』등 정통론에 입각한 중국사 서술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김우옹의『속강목』은 당시 송원사 교재로 주로 활용되던 상로의『강목속편』을 자신의 정통론에 입각하여 수정하고, 원나라의역사는정통이아님을밝혔다. 김우옹은 상로의『강목속편』이 주자의 義例와 합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 비판하고, 『속강목』을 편수하였다. 『강목속편』에서 정통으로 인정되었던 원나라를『속강목』에서는 정통으로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권12에 해당하는 원나라 역사의 많은 부분이 산삭되었다. 김우옹은『속강목』에서 원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1293년(원세조 지원17년)~1368년(원순제 지정28년)까지의 기록에 대해 세년은 分注하여 작은 글씨로 기록하였으며, 국호와 묘호는 쓰되 군명 대신 이름을 적어 원이 정통이 아닌 무통임을 드러내었다. 또한 황제와 고위관직 등 원나라의 기본적인 동정 이외에 재이나 원말의 반란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하여 원이 정통이 아니기때문에 치세가 불안함을 강조하였다. 다만 원나라의 황제를 ‘主’가 아닌 ‘帝’로 지칭하거나 황제의 즉위를 ‘立’이 아니라 ‘卽位’로 표현하였으며 황제의 죽음은‘崩’이 아니라 ‘殂’로 표현함으로써 정통과 무통이 혼재된 표현이 등장한다. 김우옹은 1591년(선조 24) 11월부터『속강목』의 편수를 시작하여 1595년(선조 28) 3월에『속강목』을 완성하였다. 1771년(영조 47)에 당시 왕세손이었던 정조의 명으로 내각에서 활자로『속강목』이 인쇄되었으며, 1808년(순조 8)에 성주의 청천서원에서 김우굉의 7대손인 김한동을 중심으로 초고의 오류를 바로잡고 목판으로 간행하였다.『속강목』에 주목한 것은 이항로를 비롯한 유중교, 김평묵 등의 화서학파였다. 유중교와 김평묵은 중심으로『화동강목』이 편찬되었다.『화동강목』은 원을 정통으로 인정하지 않는 큰 뜻은 같았지만, 『속강목』이 원을 정통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원사를 서술함에 주희의『강목』서법과 맞지 않은부분까지 엄격하게 수정함으로써 화이의 구분과 원의 무통을 강조하였다.
키워드
- 제목
- 金宇顒의 元史 인식과 『續資治通鑑綱目』
- 제목 (타언어)
- Kim Woo-ong′s The awareness of Yuan-dynasty's history and 『Xuzizhitongjiamgangmu』(『續資治通鑑綱目』)
- 저자
- 이인복
- 발행일
- 2022-06
- 유형
- Y
- 저널명
- 韓國史學史學報
- 호
- 45
- 페이지
- 55 ~ 96
- 언어
- KOR
- 출판사
- 한국사학사학회
- 발행국가
- 대한민국
- 분량
- 42 페이지
- ISSN
- P 1229-7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