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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신라인들은 산악을 신성시하였다. 그래서 시조가 산 정상에 내려왔다든가 선악에 태어났다는 설화를 많이 남겼다. 물론 이를 사실로 믿긴 어렵지만, 일찍부터 산악을 성산으로 숭배하고 신앙한 전통이 이러한 설화들을 만들어 내었다고 하겠다. 신라에서는 명산대천을 大祀·中祀·小祀의 세 등급으로 나누어 제사하였다. 대사인 三山이 신라 왕경과 그 주변 지역을 대상으로 하였다면, 중사의 첫머리에 나오는 五岳은 통일된 신라의 5방을 무대로 하였다. 소사 또한 전국의 여러 산악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 같은 정연한 산악숭배 체계는 삼국통일기 중국의 문물을 수입하면서 비롯되었다. 이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삼산과 오악에 대한 제사였다. 이들이 국가제사로서 확립된 것은 삼국통일 직후인 7세기 후반이었다. 삼산과 함께 『삼국사기』 제사지에 편제된 오악은 “新羅五岳”이었다. 수도에는 “王京五岳”이 별도로 존재하였는바 학계에서는 대체로 동악 토함산, 서악 선도산, 남악 남산, 북악 금강산, 그리고 중악 낭산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여러 기록에서는 한결같이 南岳은 含月山으로 나타남을 주목하였다. 나아가 『삼국유사』 등에서 왕경오악의 구체적 사례를 검토하고, 남악은 南山이 아니라 含月山임을 확인하였다. 그래서 남산이 왕경 남쪽의 靈山이면서도 남악이 되지 못한 이유는 남산에 南山新城이 축조되고 왕궁의 일부로 인식되었기 때문으로 해석하였다. 왕경오악의 성립 시기로 문무왕대를 주목하였다. 그래서 신라오악과 같은 시기인 삼국통일 직후인 7세기 후반에 출현하여 서서히 유행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국가제사로서 『삼국사기』 제사지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라오악보다는 관념적이며 구속력이 약했다고 파악하였다. 끝으로 북악 금강산의 왕경의 神聖地로서의 중요성을 살펴보았다. 금강산만이 신라 6성 기원 설화와 관련되고 두 성씨 시조의 탄강지로 인식되었다는 것은 토착신앙의 중심지로서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음을 말해주었다. 또한 금강산은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하는 신령스런 장소였다. 신라 4靈地의 하나로서 산악신앙에 바탕을 둔 聖所였던 것이다. 한편, 금강산은 신라 불교 공인의 聖地였다. 법흥왕대 이차돈의 순교와 관련이 있어, 그의 옛 무덤이 수축되고, 추모하는 순교비가 세워졌으며, 예불하는 향도가 결성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금강산이 왕경오악 가운데 북악으로서 위상이 높았던 사실과 무관치 않았다.
키워드
- 제목
- 신라의 山嶽崇拜와 북악 金剛山
- 제목 (타언어)
- Mountain Worship of the Silla People and Mount Geumgang, the Northern Mountain
- 저자
- 이영호
- 발행일
- 2023-09
- 유형
- Y
- 저널명
- 영남학
- 호
- 86
- 페이지
- 85 ~ 124
- 언어
- KOR
- 출판사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 발행국가
- 대한민국
- 분량
- 40 페이지
- ISSN
- E 2713-8070
P 1738-77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