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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우리 선현에게 산수(山水)는 삶의 터전이자, 공부와 풍류의 공간이었다. 낙동강은 생명의 근원인 물을 소유하고 있기에,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강을 통해 경상좌 · 우도, 서울 · 경기까지 교류와 협력, 갈등을 일으키며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본 논의는 16-17세기에 활동한 한강 정구 · 여헌 장현광 · 우복 정경세를 중심으로, 이들이 어떻게 낙동강을 인식하며 문학으로 창작하고 있는지, 그 동이성(同異性)을 살펴보고 나아가 문화현상을 고찰했다. 정구 · 장현광 · 정경세의 낙동강 인식은 첫째, 놀이와 선유(船遊)의 공간으로 활용하며, 풍류를 즐기고 있었다. 이들은 낙동강(洛東江) 가에서 소요를 하는 소소한 즐거움과 달밤에 뱃놀이를 즐기며 풍류를 만끽하고 있었다. 즉 공자의 기상을 함양하고 풍류를 즐기고 있었다. 동인(同人)과 함께 물가에서 소요하기도 하고, 뱃놀이를 하며 달구경과 시를 창작하기도 했다. 공자와 증점이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대에서 바람을 쐬는 기상과 뱃놀이 문화가 적극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전대의 도학자를 추숭하며 은일(隱逸)과 구도(求道)를 지향하고 있었다. 낙동강은 길재, 김굉필, 퇴계학파 등 도학자를 추숭하고 있었다. 이들은 낙동강 가에 은일하여, 구도(求道)를 지향하며 학문과 성정 함양에 힘을 쏟고 있었다. 그의 제자 및 동인(同人)은 낙동강 가에 집을 지어, 왕래와 교유를 하며 학문을 배우고 도학 함양을 함께하고 있었다. 이들은 공자의 기상을 함양하고, 도(道)와 덕(德)을 겸비하고자 노력했다. 낙동강 가는 은일처, 도학처가 되어 제자들과 함께 낙동강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정구 · 장현광 · 정경세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求道와 풍류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두 문화가 혼융되어 반복되어 나타나, 놀이와 구도의 습합이 이뤄졌다. 낙동강은 도맥이 흐른다고 생각하며 강학(講學)과 선유(船遊) 등의 문화를 형성했다. 이들은 좁게는 학단을 형성하고, 넓게는 도맥[학파]을 형성해 전승하고 있었다. 즉 당대 영남 사림파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비록 지역은 달리했지만, 정구는 대구 인근에서 장현광은 구미에서 정경세는 상주의 낙동강 가에서 제자를 양성하고 학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키워드
- 제목
- 16-17세기 선비들의 낙동강문화(洛東江文化)와 그 의미 - 정구, 장현광, 정경세의 문학 작품을 중심으로 -
- 제목 (타언어)
- 16th and 17th century scholars’ culture of 洛東江 and its meaning - Focusing on the literary works of Jeong Gu, Jang Hyeon-kwang, and Jeong Kyung-se -
- 저자
- 김종구
- 발행일
- 2022-09
- 유형
- Y
- 저널명
- 한국학논집
- 호
- 88
- 페이지
- 31 ~ 68
- 언어
- KOR
- 출판사
-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 발행국가
- 대한민국
- 분량
- 38 페이지
- ISSN
- E 2671-7492
P 1738-8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