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漢代 종이 활용에 반영된 서사매체의 권력성 ―蔡倫의 사례를 중심으로―

The Power of Writing Media Reflected in the Use of Paper during the Eastern Han Dynasty: A Case Study of Cai Lun (蔡倫)
  • 김종희

초록

본고는 채륜(蔡倫)의 종이 제조에 내재된 정치적·사회적 의미를 분석하였다. 채륜은 ‘발틀로 걸러내는 工程’을 통해 개량된 종이를 제조했으며, 허신(許愼)의 『설문해자』에서 “絮一 也”라고 ‘紙’를 풀이한 내용의 핵심은 틀로 한번 걸러내는 “一 ”이라는 工程에 있다. 이 공정은 방직을 통해 제조된 비단과 확연히 성격을 달리한다. 後漢시기에 ‘帋’가 등장한 것도 이러한 요인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발틀로 걸러내는 工程’은 이미 前漢 시기에 존재했으며, 솜이나 다른 섬유 재료를 혼합한 종이 또한 이 공정을 통해 제조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식물성 섬유로 만든 종이만을 ‘帋’라 불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紙’·‘帋’의 의미 형성 및 통합에는 채륜의 종이 제조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여기서 특정 글자의 의미가 권력적 맥락에 의해 규정될 수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채륜의 종이 제조는 和帝와 鄧皇后(이후 鄧太后)의 신임에 기반한 정치적 행위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채륜이 종이를 제조했을 즈음, 朝廷에서는 상당수의 장서를 난대(蘭臺)에서 동관(東觀)으로 옮기고, 동관을 중심으로 다양한 학술 활동을 하였다. 특히 朝廷은 채륜에게 경적(經籍)의 교감(校勘)을 주관하도록 명하였는데, 이는 종이를 제조한 이후의 일이다. 당시 종이는 竹·木簡의 내용을 비단에 베껴 쓰기 위한 연습용으로 사용되었거나, 교감 과정에서 일부는 竹·木簡이나 비단을 대체하는 서사매체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상술한 일련의 활동은 채륜이 점차 권력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채륜 사후에도 그는 기념화되었으며, ‘채후지(蔡侯紙)’는 그 결과물이었다. 이 채후지가 당시 모든 종이를 포괄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대표성을 가진 서사매체로 기능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채륜 사후 더욱 중요해진다. 환관들이 朝廷 내 서사재료의 공급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永壽 3년(157년)에 이르면 小黃門이 守宮令을 맡아 紙筆墨의 보급을 주관하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秘書監(159년 설치)을 통해 환관이 경전 교감업무까지 맡아 종이를 적극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채후지’는 환관 권력화의 도구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환관의 종이 활용방식에 영향을 받은 중앙의 儒生 등 식자층들이 서적이나 서신에 종이를 점차 사용하였다. 기층 행정문서의 경우, ‘蔡侯帋’(즉 蔡侯紙)로 명명된 서사매체를 官方에서 구입하고 회계 처리하는 체제 속에 보다 점진적으로 종이가 확산되었다. 즉 서사매체의 전환을 둘러싼 분야별 속도 차는 당시 국가 시스템을 비롯해 환관의 정치적 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키워드

Cai Lun paper; early paper; writing medium; eunuch politics; 채후지; 종이; 서사매체; 환관정치; 蔡侯紙; 帋; 書寫媒介; 宦官政治
제목
後漢代 종이 활용에 반영된 서사매체의 권력성 ―蔡倫의 사례를 중심으로―
제목 (타언어)
The Power of Writing Media Reflected in the Use of Paper during the Eastern Han Dynasty: A Case Study of Cai Lun (蔡倫)
저자
김종희
DOI
10.24161/CHR.154.001
발행일
2025-10
유형
Y
저널명
중국사연구
호
154
페이지
1 ~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