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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고려 전기의 본궐(만월대) 정비와 국왕의 존재 양상을 탐구한 것이다. 고려 왕조의 궁궐, 특히 개성의 만월대는 918년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 이후부터 이자겸의 난(1126)으로 본궐이 전소되기 전까지 왕권의 정치적, 사회적 중심지로 기능했다. 만월대의 발굴 조사는 남북한 공동 연구를 통해중요한 고고학적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본궐 공간의 구조와 기능을 분석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본 연구는 고려 전기의 본궐 정비와 국왕의 거주 공간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공간의 의미와 그 속에서 국왕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먼저 2장에서는 고려 전기의 본궐 정비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하였다. 태조대에는 송악(개성)으로 천도한 후 기존 궁궐을 활용하여 본궐을 정비했고, 광종대에는 궁궐을 대규모로 수리하여 황궁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였다. 특히, 거란의 침입으로 개경이 파괴된 이후 현종은 본궐 복구에 집중하였으며, 1020 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재정비 작업을 통해 본궐의 위상과 기능을 확립하였다. 현종대에는 본궐 내의 정전(正殿), 편전(便殿), 침전(寢殿) 등의 배치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궁궐 공간의 정치적, 사회적 기능을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다음으로, 3장에서는 본궐의 공간을 외전(外殿)과 내전(內殿)으로 나누어 국왕의 존재 방식을 분석하였다. 정전 영역은 외전으로, 침전을 비롯한 서부건축군의 기타 영역들은 내전으로 파악하였으며, 편전의 경우 양자의 요소가 혼재하되 합문이라는 시설을 통해 공간이 차단되거나 혹은 연결되는 것으로 그성격이 변화한다고 파악하였다. 외전에서는 주로 국왕이 조회와 의례의 주재자로 존재하면서 공적인 역할을 지녔다. 편전의 경우 다종다양한 공적 의례가나타나는 경향이 보이면서도 사적인 유희의 흔적도 엿보인다. 내전 영역은 현재 남아있는 유구로 볼 때, 공간적으로 분명히 외전 영역과분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구조적인 특징으로 인해 내전에서 국왕은 비교적 사적인 영역을 누릴 수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의 불교 의례는 왕실 구성원과 국왕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 만큼 기복적인 요소가 드러나는 사례가 많았음을 지적하였다. 이상의 작업을 통해 고려시대 본궐의 공간과 그 속에서 활동한 사람에 대한 활발한 논의들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키워드
- 제목
- 고려 전기 본궐(本闕) 정비와 국왕의 공간
- 제목 (타언어)
- The Establishment of Manwoldae and the King's Space in the Early Goryeo Period
- 저자
- 임지원
- 발행일
- 2024-12
- 유형
- Y
- 저널명
- 민족문화논총
- 호
- 88
- 페이지
- 123 ~ 149
- 언어
- KOR
- 출판사
-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발행국가
- 대한민국
- 분량
- 27 페이지
- ISSN
- P 1229-86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