征東行省 개조 시도와 14세기 몽골(원)-고려 관계 - 增置에서 立省으로 -

A Study on the Relationship between Mongol and Goryeo in the 14th Century from the Transformation of Zhengdong Province(征東行省)

초록

본고는 고려에 설치된 정동행성을 둘러싸고 14세기에 지속적으로 제기된 소위 ‘입성론’, ‘입성책동’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정동행성과 고려왕권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시도하였다. 1278년 충렬왕은 쿠빌라이에게 전쟁을 도울 것임을 약속하고 이후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정동행성의 지휘부에서 재상의 지위를 획득하여 몽골인 재상과 ‘共事’하는 형태로 권한을 확보하였다. 1287년 장기화되는 전쟁에 불만을 품은 동도제왕 나얀의 난을 계기로 충렬왕은 정동행성의 유일한 재상이 되었다. 그러나 쿠빌라이의 사후 변화된 대외 환경과 고려 내부의 부마들 간의 갈등을 계기로 그 지위는 동요되기 시작했다. 정동행성 개조 시도는 형식상으로 增置, 合省(合倂), 立省의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增置는 몽골 조정에서 정동행성의 장관(평장정사)을 파견하여 고려국왕의 독점적 지위를 박탈하고 고려의 내정에 직접적으로 간여하는 것이다. 이 조치는 대칸의 승낙과 결단이 필요한 점에서 강력하고 위협적이었다. 2차례 增置 사태는 모두 부마들 간의 정쟁으로 초래되었고 활리길사의 활동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적 파급력도 컸다. 1차 증치 사태가 수습된 직후 1302년 요양행성의 홍중희는 정동행성과 요양행성을 합쳐서 하나의 행성으로 만들고 치소를 동경에 둘 것을 제기했다(합병/합성). 정동행성은 고려의 강역에 설치된 것이기에 합병이라는 방식으로 정동행성을 폐치함으로써 국왕이 가지는 省權을 박탈하여 고려를 무장해제 시키려는 시도였다. 1307년 무렵 정동행성과 고려왕권이 긴밀하게 결합됨에 따라(‘國王丞相’) 정동행성을 폐치하고 제국 내지와 같은 행성을 설치하자는 주장(立省)은 자동적으로 고려왕조의 멸절(‘削國號’)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런데 立省 제기 목적은 제안자와 시기에 따라 변화가 생겼다. 충선왕 복위 초 홍중희가 ‘立省’을 제안한 것은 고려왕조를 멸절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 홍중희를 제외하면 이후의 입성 주장은 고려왕권, 고려국왕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모되었다. 1323년 부마 왕고를 국왕으로 세우려던 자들은 자신들의 시도가 실패하자 충숙왕에게 정치적 보복이나 처벌을 받게 될 것이 두려워 2차례나 입성을 주장하였다. 1343년 기철 등은 충혜왕이 ‘貪淫無道’하다며 立省을 제기하고 이후 국왕을 체포하였다. 요컨대, ‘立省’은 왕위를 노리거나 뺏긴 정치 세력이나 국왕을 공격하는 자들의 정치적 수단이나 구호로 변모하였다. 정동행성은 고려의 강역에 설치되었기에 반드시 ‘征東’이라는 冠을 유지해야 했고, 고려왕권과 결합되었기에 제국 내지와 같은 행성이 되어서도 안되었다. 정동행성 개조를 둘러싼 갈등은 본질적으로 고려왕권과 정동행성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종래 ‘원의 간섭’의 상징으로 이해되어 온 정동행성은 실상 고려왕권의 보호장치였고, 왕권과 긴밀하게 결합한 고려왕권의 일부였다.

키워드

몽골(원); 고려; 쿠빌라이; 정동행성; 요양행성; 立省; Mongol(Yüan) Empire; Goryeo Dynasty; Kubilai; Zhengdong Province(征東行省); Liaoyang Province; Establishment of a new province after the abolition of Zhengdong Province (立省)
제목
征東行省 개조 시도와 14세기 몽골(원)-고려 관계 - 增置에서 立省으로 -
제목 (타언어)
A Study on the Relationship between Mongol and Goryeo in the 14th Century from the Transformation of Zhengdong Province(征東行省)
저자
최윤정
DOI
10.17751/DHR.156.165
발행일
2024-09
유형
Y
저널명
대구사학
권
156
페이지
165 ~ 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