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암 정교의 시작(詩作) 양상과 그 의미

Jinam(進菴) Jeong-gyo(鄭墧, 1799~1879)'s Poetry Patterns and Their Meaning
  • 백운용

초록

진암(進菴) 정교(鄭墧, 1799~1879)는 19세기 성주를 중심으로 활약한 학자이다. 1915년 발간한 『진암선생문집』이 있으나 관련 연구가 전무한데, 이 글에서는 우선 그의 시를 대상으로 그가 시를 통해 보여주는 지향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정교는 한강 정구의 8대손으로 성주에서 태어나 가학을 이었고, 문중의 촉망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정교의 입장에서, 예도가 무너지고 나라마저 기울어가는 이런 시대에 문중은 기필코 지켜야 하는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를 지닌 것이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가 지은 시에는 그와 관계를 맺은 사람을 대상에게 당부하고 경계한 내용이 많았다. 한편 무너져내리는 역사의 현실 속에서 그것을 부지하려 애썼던 정교는 보수적 인식과 실천이라는 선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모범이 되어야 하는 문중의 촉망 받는 인사라는 외적인 환경과 온순하고 차분하면서 순종적이라는 내적인 성향이 이런 인식과 실천을 강화하였을 것인데, 자연을 관념적으로 인식하고 인공의 공간이 지닌 상징성을 표출하는 그의 시적 경향에서 이런 모습을 적실히 볼 수 있다. 이러한 보수적 인식과 실천은 당대 역사를 인식하여 시화할 때도 그대로 적용되어 나타난다. 역사 인식을 드러내는 시에서는 당대 조정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지켜야 할 사회적 가치와 윤리를 높이 평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서 정교는 학자로서의 자세와 실천을 잃지 않았다. 자신의 내면과의 만남을 대상으로 한 시에서 정교는 과오를 반성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졌으며, 깨달음의 경지에 나아간 순간을 포착하기도 하였다. 정교의 시에 보이는 이러한 점은 그가 유학의 도리를 실천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식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런 생각과 실천이 일정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교가 이처럼 내외적 환경과 성향 속에서 타인과의 만남, 자연, 인공의 공간을 대상으로 작시할 때 보수적 인식과 독실한 학문적 자세를 유지하였다고 해서 그가 오로지 경직성에 매몰한 것은 아니었다. 유람이나 선유를 통해 인공의 인식이 개입하지 않은 새로운 공간을 만났을 때 그는 그 속에서 흥취를 느끼고 이를 거리낌 없이 토로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볼 때, 그는 한마디로 감수성이 예민한 깐깐한 유학자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감수성은 쉽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내면에 잠재하였다가 유람이나 선유 등 그런 감성이 드러나도 괜찮다는 통념 속에서 가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같은 정교의 모습은 19세기 유학자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문중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내적인 성향보다는 외적인 환경에 순종해야만 했던 고독한 학자의 모습이 정교의 시에 서려 있다.

키워드

진암 정교; 詩作의 양상; 보수적 실천; 19세기 전형적 유학자; Jinam(進菴) Jeong-gyo(鄭墧); Poetry Patterns; conservative practice; a typical 19th-century Confucian scholar
제목
진암 정교의 시작(詩作) 양상과 그 의미
제목 (타언어)
Jinam(進菴) Jeong-gyo(鄭墧, 1799~1879)'s Poetry Patterns and Their Meaning
저자
백운용
발행일
2024-12
유형
Y
저널명
국학연구론총
호
34
페이지
37 ~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