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에 보이는 ‘政變’과 역사적 의미

Political coupd'etats in Koguryo History and Their Historical Significance
  • 김진한

초록

이 글에서는 고구려사에서 일어났던 정변의 양상을 살펴보고 각 정변이 갖는의미는 무엇인지 검토해 보았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300년 이전까지를 전기, 6세기 이후를 후기로 구분했다. 중기에는 정변 기사가 명확치 않아 제외했다. 정변의 발생 횟수는 전기에 비해 후기가 적다. 이는 국내전승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자료적 한계에 따른 것이다. 또한 전기에 비해 왕권이 안정되고 왕위계승원칙이 확고해진 것도 염두에 둘 수 있다. 아울러『隋書』와『舊唐書』에는 반역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가하였기에 법을 어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다. 이에 따라 모반 자체가 적었을 가능성도 예상된다. 정변의 명분으로는 초기에 天孫이라는 血緣과 武力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민중왕대부터 ‘幼少’, ‘老衰’, ‘暴政’ 등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처음 신화에 가탁하거나 자격을 논했지만 점차 현실문제로 이어졌음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전기의 정변주도세력이 혈연적 성격이 강했다면, 후기에는 지연적 성격을 가진다. 이는 정치세력의 지형이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볼 때, 그에 따른 과제를 실천해 나간 태조왕・신대왕・고국천왕・창조리 정변 등은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권력 쟁취에 몰입한 민중왕・차대왕・안원왕・추군과 세군・연개소문・연씨형제 정변 등은 혼란을 야기하였을 뿐 아니라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키워드

고구려; 정변; 명분; 주도세력; 연개소문; Koguryo; political coup d'etat; justification; the leading force; Yeongaesomun
제목
고구려사에 보이는 ‘政變’과 역사적 의미
제목 (타언어)
Political coupd'etats in Koguryo History and Their Historical Significance
저자
김진한
DOI
10.35160/sjekh.2024.4.46.49.
발행일
2024-04
유형
Y
저널명
한국고대사탐구
호
46
페이지
49 ~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