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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19세기 후반 경상도 상주의 향촌문제를 파악하고 상주 동학농민군의 활동 방향성을 논하고자 했다. 선행연구는 동학농민전쟁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거나, 상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이들의 향촌문제 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로 인해 상주 동학농민군의 활동 방향성을 확인하는데 부족함이 있었다. 상주 향촌문제의 원인은 삼정문란과 이에 연관된 부정부패였다.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던 이들은 상주 내에서 영향력이 강했던 향촌유력자이다. 향촌문제는 농민항쟁에서 지적되었지만 개혁되지 못한 채 1880년에 부임한 상주목사 민종렬에 의해 다시 지적되었다. 상주의 향촌문제는 재발 가능성을 보유한 채 이어졌으며, 이는 곧 동학농민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농민항쟁 당시의 향촌문제는 삼정문제로 집약되지만, 향촌 운영의 중심에 있었던 이들의 토호행위와 중간수탈 등이 주목된다. 상주의 소민은 봉기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지만, 항쟁 수습 후에도 삼정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태가 1880년대까지도 이어졌고, 상주목사 민종렬의 『상주사례』를 통해 향촌의 여러 문제가 지적되었다. 결국 향촌 운영에서의 문제는 신분제 변동, 사족의 분화, 향촌 내 갈등 등과 맞물려 더욱 복잡해졌고, 그 피해는 상주의 소민들이 받게 되었다. 상주의 소민은 부세 과중에 따른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향촌을 이탈했고, 당시 다시 부상하고 있던 동학에 투신했다. 1894년 상주의 동학도는 토호 행위와 중간 수탈을 벌인 이들을 공격했고, 향촌 운영에 관여된 이들을 개혁대상으로 삼아, 이전보다 적극적인 항쟁으로서 동학지도부가 제시한 개혁안을 관철하는 활동에 참여했다. 최시형의 재기포령은 경상도 동학도의 폐정개혁 활동에 대한 공인이 되었다. 동학도는 농민군으로 전환되어 상주읍성을 공격했다. 읍성 공격은 향촌유력자 중심의 향촌질서를 소민 중심의 질서로 개혁하는 움직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읍성 공격 성공은 농민군 개혁활동의 일차적 성공이었으나, 일본군에 의해 패산해 개혁을 추진하지 못했다. 결국, 동학농민군의 활동 방향성은 향촌 운영에 따른 폐단을 개혁하고 소민 본위의 향촌질서로 개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농민군이 개혁하고자 했던 문제들은 해결되지 못했고, 활동 기반도 파괴되었다. 향촌유력자는 농민군이 패산한 뒤에 상주에서 향촌 질서를 재확립했지만, 그들이 유지하고자 했던 질서는 조정의 개혁정책을 통해 유착관계가 재편되면서, 원하던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키워드
- 제목
- 19세기 후반 경상도 상주의 향촌문제와 동학농민전쟁
- 제목 (타언어)
- The Local Problems and the Donghak Peasant War in Sangju, Gyeongsang-do in the Late 19th Century
- 저자
- 송진현
- 발행일
- 2023-02
- 유형
- Y
- 저널명
- 대구사학
- 권
- 150
- 페이지
- 103 ~ 141
- 언어
- KOR
- 출판사
- 대구사학회
- 발행국가
- 대한민국
- 분량
- 39 페이지
- ISSN
- P 1225-9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