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량․방내리 도시유적으로 본 모량부

Morangbu seen Through the Urban Archaeological Sites in Morang and Bangnae-ri
  • 이동주

초록

모량부는 신라 중고기 왕실과 네 차례 혼인관계를 맺은 왕비족으로, 정치적 중요성을 지닌 집단이었다. 금척리와 방내리 고분군에서 확인되는 독자적인 묘제는 모량부의 독특한 문화와 사회적 위상을 보여준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모량부는 왕경 서쪽의 관문 역할을 하며, 서교, 북교, 서부로 대표되는 공간이었다. 또한 ‘무산 대수촌’으로도 불렸는데, 무산은 단석산으로 보이며, 실제 주요 유적은 이 산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모량․방내리 도시 유적은 도로망으로 체계적으로 구획되어 경주 왕경의 구조와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도시의 구획은 모량리 사지가 건립된 6세기 말~7세기 초 이후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모량리 사지의 방향과 도로망의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 점은 도로조영의 시간차를 반영한다. 또한 이 지역에서는 하천 범람을 방지하기 위한 석축과 성토 작업 등 인위적인 환경 조성이 이루어졌다. 아울러 수변 제사의 흔적도 발견되어 당시의 종교적 행위를 엿볼 수 있다. 통일신라 후기인 7세기 후반부터 9세기까지 모량부는 중요한 중심지로 발전했으며, 기와 건축물을 통해 도시 경관이 장엄되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기와는 황룡사, 월성 등 국가의 권위건축물에 공급된 것과 동일한 디자인이다. 한편 화천리와 방내리의 기와가마에서는 대형 기와가 생산되었다. 이러한 대형기와는 남산신성, 부산성, 월정교 남측부지 유적 등 국가의 주요 시설에 공급되었다. 모량부의 기와가마에서 생산된 기와는 국가의 공적 시설에 공급되어 도시 장엄에 크게 기여하였다.

키워드

모량부(牟梁部); 금척리․방내리 고분군(金尺里․芳內里 古墳群); 모량리 사지(牟梁里 寺址); 단석산(斷石山); 도로망과 도시구획; Morangbu(牟梁部); Geumcheok-ri and Bangnae-ri Burial Clusters(金尺里․芳內里 古墳群); Morang-ri temple site(牟梁里 寺址); Mount Danseok(斷石山); Road Networks and Urban Planning
제목
모량․방내리 도시유적으로 본 모량부
제목 (타언어)
Morangbu seen Through the Urban Archaeological Sites in Morang and Bangnae-ri
저자
이동주
발행일
2024-12
유형
Y
저널명
신라문화
권
65
페이지
115 ~ 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