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문무왕의 海洋 인식과 船府의 설치

Silla King Munmu's Maritime Perception and Establishment of the Shipping Office
  • 이영호

초록

신라 문무왕은 재위 16년인 676년에 이른바 삼국통일을 이룩하였다. 육지에서의 전투가 중심이었지만, 해전이 차지한 비중도 적지 않았다. 당은 바다를 통해 대규모의 군대를 파견하였고, 왜 또한 白江口 전투에서 대규모의 병력을 바다를 통해 참전시켰다. 그리고 나당전쟁은 여러 해전을 거쳐 기벌포 해전에서 종말을 보았다. 여기서는 먼저 삼국통일을 달성한 문무왕의 해양 인식에 대해 살폈다. 신라가 바다를 중시하게 된 과정을 무열왕가의 해양 중시 정책에서 찾아보았다. 태종무열왕 김춘추는 즉위 전인 진덕여왕대에 바다 건너 당과 왜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법민ㆍ인문ㆍ문왕 등 그의 아들들 또한 아버지의 정책에 발맞추어 활발한 대당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래서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문무왕 김법민은 해로로 중국을 다녀온 뒤 즉위한 최초의 신라왕들이었으며, 이들은 해양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하였음을 밝혔다. 해양 관련 신라의 중앙관부로 船府署와 船府가 있었다. 종래의 견해는 병부 산하의 선부서가 문무왕 18년에 선부로 승격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기존의 선부서가 존재한 상태에서 선부가 별로로 설치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선부서와 선부는 역할을 달리하며 각각 존재하였고, 선부서가 수군과 군선을 관리하였다면, 선부는 민간 선박과 교역을 담당하였다고 파악하였다. 다음으로 문무왕의 장례와 동해의 연관성을 살폈다. 문무왕은 화장하여 동해에 장례한 신라의 첫 왕이었다. 이에 문무왕을 비롯한 화장한 8명의 왕들의 사례를 검토하였다. 중대 및 하대초에는 왕의 유언에 따라 화장하여 동해에 산골하였다면, 신라 말기에는 화장한 다음에 산에서 산골 또는 장골의 방법으로 장례를 치렀다. 그래서 화장 후 동해에서 산골한 것은 중대에 일정 시기에 한해 나타났고, 동해가 신성한 바다로 인식되었음을 밝혔다. 나아가 문무왕릉비가 대왕암을 마주한 감은사에 건립되지 아니하고 사천왕사에 건립되었다는 견해에 대해 좀더 세밀한 검토가 필요함을 지적하였다.

키워드

Cremation; East Sea; Gameunsa Temple; King Munmu; King Taejong Muyeol; Maritime Agency (船府署); Sacheonwangsa Temple; Shipping Office (船府); Tombstone of King Munmu; 감은사; 동해; 문무왕; 문무왕릉비; 船府; 船府署; 사천왕사; 태종무열왕; 화장
제목
신라 문무왕의 海洋 인식과 船府의 설치
제목 (타언어)
Silla King Munmu's Maritime Perception and Establishment of the Shipping Office
저자
이영호
DOI
10.37280/JRISC.2022.12.61.7
발행일
2022-12
유형
Y
저널명
신라문화
권
61
페이지
7 ~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