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학맥 문인록을 통해 본 강우 유학의 전개

The Development of Gang-u(江右) Confucianism through the Record of Disciple(門人錄) of the Academic Lineage of Toegye(退溪學脈)

초록

16세기 이후 영남은 퇴계학파와 남명학파의 경쟁과 유대 속에서 독보적인 학문적 위상을 확보하였다. 인조반정 이후 강우의 남명학파는 큰 위기를 맞이하였지만, 퇴계학파와의 연계 및 흡수를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였다. 퇴계학파 또한 영남의 학문적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그 외연을 넓혀가며 강우의 지식인을 포섭하였다. 이 글에서는 퇴계학맥 문인록에 포함된 강우지역 문인에 주목하여 강우 유학의 지형에서 그 학맥이 전승‧확산‧변화 되어간 흐름을 계량적 분석을 통해 실증적으로 추적해 보았다. 이황 이후 다수의 강우 유림은 인조반정을 거치며 성주의 정구와 장현광을 중심으로 한 퇴계학맥으로 흡수되었고, 상주의 정경세는 남명학파와 거리를 둔 채 독립된 문인집단을 형성하였다. 영남의 서인화 경향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17세기 중반 이현일은 안동을 중심으로 한 퇴계학파의 재결집을 시도하였다. 그는 진주권의 남명학파와 직접적으로 연대하며 퇴계학맥의 외연을 확대해 갔고, 분열된 영남학파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강우지역 내 유림의 와해는 가속화 되었고 18세기 이상정에 이르러 두 학파 간의 연대는 보다 느슨해진 양상으로 변화하였다. 19세기 초 안동의 류치명은 강우 전역으로 퇴계학맥의 영향력을 확대하였지만, 김흥락에 이르면 그 영향력은 축소되었다. 연계 양상도 이전과는 달랐으며, 문인 구성도 크게 변화하였다. 류주목은 과거의 독립성을 극복하고, 문인집단의 범주를 강우로 확대하였다. 장복추는 성주 일대뿐만 아니라 거창‧합천‧창녕 등 낙동강 중류의 강우 문인을 집중적으로 흡수하였다. 이 같은 변화는 강우지역 내 퇴계학맥 학자들의 결속력이 견고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허전을 중심으로 한 강우 유림의 재결집과도 연관이 있다. 17세기 이후 지리적 이점을 갖춘 성주‧고령‧밀양 외 진주‧창녕‧산청‧삼가‧합천 등 남명학파의 중심 지역이 퇴계학맥과 많은 관련을 맺고 있는데, 이는 ‘영남학파’라는 학문적 동질감을 배경으로 유학의 명맥을 이어가고자 한 노력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고성‧사천‧안의‧의령‧칠원은 상대적으로 안동권 퇴계학맥과 연관성이 높은 곳들이며, 거창‧김해‧하동‧함양은 성주권 퇴계학맥과의 영향력이 높았다. 문인 중첩 또한 이들 지역에서 활발했는데, 그들은 19세기 강우 유학계에서 중요한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키워드

Youngnam School; Toegye School; Nammyeong School; Record of Disciple; Confucianism Gang-u; 영남학파; 퇴계학맥; 남명학맥; 문인록; 강우 유학
제목
퇴계학맥 문인록을 통해 본 강우 유학의 전개
제목 (타언어)
The Development of Gang-u(江右) Confucianism through the Record of Disciple(門人錄) of the Academic Lineage of Toegye(退溪學脈)
저자
김지은
발행일
2024-08
유형
Y
저널명
南冥學硏究
호
81
페이지
233 ~ 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