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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1965년부터 1970년대 전반에 걸쳐 추진되었던 화전정리사업이 산림보호에 대한 당위보다도 문명화 사명과 냉전의 이분법적인 프레임에 의해 무리하게 추진되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박정희 정권의 치산녹화와 그 주요 사업으로서 화전정리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었다는 기존의 서사를 넘어 한국 사회가 화전민을 바라보는 방식이 해방 이후부터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추적한다. 우선 한국은 기본적으로 헌법에서부터 화전민을 보호하는 나라였다. 국회에서 국가가 3정보를 초과한 농민들의 토지를 매입할 수 있다는 토지개혁법을 상정할 때, 당시 의원들은 화전민들을 위해 고원, 산간, 특수지역은 예외로 한다는 단서조항을 달았다. 그리고 한국전쟁 및 극심한 연료난을 겪으면서도 산림과 함께 화전민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이 국회에서,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나 1964년 지리산 대규모 도벌 사건 이후 화전민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후 정부는 1966년 화전민들을 산화, 토사유출 등 산림 황폐화의 주요 원인으로 상정하며 전국적인 화전정리사업을 단행했고, 잇따른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과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 완공은 화전민정리사업에 문명화사명과 냉전이라는 근거들을 보급했다. 화전민들은 이제 문명과 비문명의 경계, 그리고 반공과 친공의 경계에 걸친 사람들로 표상되기 시작했다. 1966년부터 70년대 말까지 시행된 전국적인 화전정리사업의 현장에는 산림 황폐화 담론보다도, 문명의 경계에 있는 화전민들을 문명화시켜야 한다는 논리와, 이들이 화전지를 떠나 문명적인 삶을 추구하지 않는 이유는 공산주의 동조자이기 때문이라는 서슬퍼런 당위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키워드
- 제목
- 보호에서 배제로: 박정희 정부 시기 경계인으로서의 화전민 표상과 화전정리사업
- 제목 (타언어)
- From Protection to Elimination: The peripheral Image of Fire-field Farmers and the Fire-field Clearance Project During the Park Chung-hee Government
- 저자
- 신동일
- 발행일
- 2023-08
- 유형
- Y
- 저널명
- 대구사학
- 권
- 152
- 페이지
- 101 ~ 136
- 언어
- KOR
- 출판사
- 대구사학회
- 발행국가
- 대한민국
- 분량
- 36 페이지
- ISSN
- P 1225-9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