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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동학농민전쟁기 경상도 상주와 김산에 부임한 소모사 정의묵과 조시영의 활동을 통해 향촌안정책의 성격을 파악하고자 했다. 기존 연구는 동학농민군의 활동과 그 연원, 유력자층 및 소모사의 대응을 연구해, 동학농민전쟁의 전국적 보편성과 지역적 특수성을 드러냈다. 다만, 기존 연구는 소모사의 향촌안정책과 관련해서는 18세기 이후 이어진 향권을 둘러싼 갈등 관계의 연장선에서 파악되지는 못했다. 수령권 강화에 따른 유력자층의 향촌 운영 참여는 재지사족의 향촌 내 영향력을 상대적으로 감소시켰다. 재지사족은 서원, 향교, 계를 통해 자신들의 결속력을 강화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향권에 관여했다. 그러나 수령과 유력자층 중심의 향촌 운영과 질서가 유지되었다. 그에 따른 폐단은 1862년 농민항쟁으로 지적되었지만, 이후에도 지속되어 향촌민을 압박했다. 결국 1894년 경상도에서도 동학농민군의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조정은 농민군 활동에 따른 혼란을 수습하고자 경상도의 요충지인 상주와 김산에 정의묵과 조시영을 소모사로 파견했다. 그들은 전직 중앙 관료이면서 각 지역 사족 사회의 구성원이었기에, 의병을 모집하고 향촌을 안정시키는 데 적합한 인물이었다. 소모사는 재지사족과 유력자층을 모아 동학농민전쟁을 수습하고자 소모영을 설치했고, 향약과 오가작통 등 성리학적 질서를 다시 세우는 향촌안정책을 시행했다. 더불어 군수품 보급과 지역 방어를 위해 향촌민의 참여를 독려했다. 그러나 상주 소모영에 참여한 재지사족은 의병을 모집하는 문제에 관망하거나 거절했으며, 유력자층은 전곡을 모으기 위한 의연금 할당에서 백성을 침탈하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정의묵은 이들을 중심으로 향촌 질서를 재구축해야 했기에 그들을 잘 타이르고 격려하는 수밖에 없었다. 김산 소모영은 재지사족이 모두 피난한 상황에서 그들의 의병 참여를 독려해야 했다. 김산의 사족은 향촌 안정의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흩어졌다. 더불어 동학 접주로 체포된 이를 처벌하지 않는 등 김산 사족 사회의 차별적 모습도 드러냈다. 결국 19세기 말까지 이어진 향권을 둘러싼 갈등은 소모영 활동에서도 드러났다. 유력자층과 재지사족의 소모영 참여 목적이 달랐고, 소모사는 재지사족의 일원으로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소모사의 향촌안정책은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성격이 강했고, 소모사는 이외의 대책을 제시할 시간과 문제의식이 부족했다. 더불어 재지사족의 향촌 내 영향력 상승을 위한 움직임은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비협조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키워드
- 제목
- 동학농민전쟁기 경상도 소모사의 향촌안정책 시도와 성격 - 상주·김산을 중심으로 -
- 제목 (타언어)
- Somo Army Official's Attempts and Characteristics of Local Stabilization Policy in Gyeongsang-do during the Donghak Peasant War - Focusing on Sangju and Gimsan -
- 저자
- 송진현
- 발행일
- 2024-02
- 유형
- Y
- 저널명
- 대구사학
- 권
- 154
- 페이지
- 131 ~ 168
- 언어
- KOR
- 출판사
- 대구사학회
- 발행국가
- 대한민국
- 분량
- 38 페이지
- ISSN
- P 1225-9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