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아찬 金恭順 神道碑片 검토

An Examination of the Fragments of the Stele to Memorialize Achan Kim Gongsun of the Silla Dynasty
  • 이영호

초록

신라 왕경인 경주 南山寺에서 새로 발견된 비편은 우리나라에서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신도비의 일부였다. 이 글은 남아있는 부분의 글자를 행별로 살펴 그 내용을 분석한 것이다. 제1행은 비석의 제목으로서 주인공의 이름이 공순이며, 관등은 6등인 아찬, 그리고 神道碑임을 명시하였다. ‘김공순’이 아닌 ‘공순’만을 밝힌 데서 성명을 연칭해서 사용하는 문화는 일반화되지 않은 사실과, ‘아찬’ 관등 아래에 존칭접미사인 ‘公’자를 붙였음을 주목하였다. 제2행부터 제8행까지는 주인공과 관련된 서술이었다. “태종대왕의 孫”이라 한 부분과 김씨의 연원을 “少昊의 후예”라 한 구절 등에서 주인공은 중대 왕실과 밀접한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진골 출신으로 추정되는 주인공은 20세 무렵에 천령군 태수에 부임하는 등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다. 유감스럽게도 그 이하 부분의 내용은 비석의 탈락으로 알 수 없다. 그러나 아찬의 관등을 가진 인물을 위해 신도비를 건립한 것을 보면, 그는 젊은 나이에 비운의 죽음을 당한 사람이 아닐까 여겨졌다. 특히 혜공왕대 일어난 6차의 大亂에 주목하고, 혜공왕 4년(768)의 大恭의 난과 결부시켜 이의 진압에 큰 공을 세운 인물로 추측해 보았다. 또한 이 비석의 건립 연대는 “天嶺郡”이란 지명에서 유추할 수 있었다. 경덕왕 16년(757) 12월에 漢化政治로 “천령군” 지명이 탄생하였으므로, 그 이후인 8세기 후반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시기를 압축할 경우 지명의 복고조치가 단행된 혜공왕 12년(776) 정월 이전의 어느 시점으로 보고, 특히 대공의 난이 진압된 직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그래서 그를 현창하기 위해 국가에서 세운 비석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상 새로 발견된 비편에 대한 기초적인 검토를 하였다. 그러나 발견된 비편이 원비석의 서두 일부에 불과하여 제한된 내용만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차후 시간을 갖고 세밀히 검토하면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밝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남은 비편들도 추가적으로 발견되길 기대한다.

키워드

김공순(金恭順);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신도비(神道碑); 천령군(天嶺郡); 태종대왕(太宗大王); 한화정치(漢化政治); Cheonryeong district; Kim Gongsun; King Taejong; Memorial stele; Policy of Sinicization; Soho Kimcheon clan
제목
신라 아찬 金恭順 神道碑片 검토
제목 (타언어)
An Examination of the Fragments of the Stele to Memorialize Achan Kim Gongsun of the Silla Dynasty
저자
이영호
DOI
10.36034/yncdoi.2022..81.37
발행일
2022-06
유형
Y
저널명
영남학
호
81
페이지
37 ~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