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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학 연구의 자료 범위와 한국유학사에서 구암 이정의 역할
초록
본고는 국역 『龜巖全書』 제작에 즈음하여, 龜巖學 연구를 위한 자료의 범위와 龜巖 李楨(1512-1571)이 한국유학사 발달에 어떠한 역할을 하였던가 하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해명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 이를 위하여 먼저 이정과 관련된 자료를 『구암집』을 중심으로 밝힌 뒤, 여기에 기초하여 구암학 연구의 부진 원인, 이정이 한국유학사에서 수행했던 역할, 道統 정립을 위한 노력 등을 두루 다루었다. 이것은 한국유학사에서 거의 잊혔거나, 잊힐 뻔한 이정을 우리 시대에 다시 소환하여, 그에 대한 학술사적 복권을 시도하기 위한 것이라 하겠다. 이정은 이황과 함께 中庸學을 바탕으로 도학을 추구하면서 이를 사회적으로 확산하기 위하여 20여 종의 성리서를 출간하였을 뿐만 아니라, 서악정사와 옥천정사를 세워 존현양사를 주도했다. 조선의 지성사는 이로써 새로워질 수 있었으며, 도통 역시 명확해 질 수 있었다. 즉, 堯舜이 전한 심법이 공맹과 주자를 거쳐 우리나라로 전해져, 김굉필→이언적→이황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였다. 이로써 사람들은 이정이 이황과 깊은 사우관계를 맺고 있었으니, 이황의 도통이 이정에게 전해진다고 믿기도 했다. 우리는 여기서 이정의 퇴계학파 내에서의 위상 조정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다. 이황이 이정에게 보낸 편지가 140여 통에 이르며, 『도산급문제현록』에 기재된 309명의 제자들 가운데 鄭之雲, 李湛에 이어 세 번째로 배치되어 있다. 이처럼 이정은 퇴계학파에서 선진 제자였으며, 이황과는 학문적 동지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더욱이 이황 스스로도 자신의 학단에서 기대승과 이정을 가장 중요한 인물로 판단하였다. 그들을 重厚하고 仁에 가까워 길을 따르며 궤도를 지켜서 반드시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라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서 본고에서는 이정에 대한 새로운 조명을 시도하고자 했다.
키워드
- 제목
- 구암학 연구의 자료 범위와 한국유학사에서 구암 이정의 역할
- 제목 (타언어)
- The Scope of Materials in Guam (龜巖) Leejeong (李楨) Study and His Roles in the History of Confucianism in Korea
- 저자
- 정우락
- 발행일
- 2022-05
- 유형
- Y
- 저널명
- 민족문화연구
- 호
- 95
- 페이지
- 45 ~ 82
- 언어
- KOR
- 출판사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 발행국가
- 대한민국
- 분량
- 38 페이지
- ISSN
- E 2672-0787
P 1229-7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