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기 시 동인지 『죽순』의 위상과 『전선시첩』으로의 이동

A study on the status and the movement to war media 『Geonseon-sichup』of 『Jook-soon(Bamboo shoot)』, a literary coterie magazine in the Liberation Period

초록

『죽순』은 1946년 창간되어 해방 4년 동안 12집이나 발간되었으며, 1979년 봄 복간호를 낸 이후에도 현재까지 발행을 계속하고 있는 대구지역의 대표적 시 동인지이다. 『죽순』은 중앙과 대타적인 지점에서 지역문학의 성과를 보여주었으며, 해방기 대구지역의 시문학에 대한 열망을 제대로 수용해 나간 매체였다. 본고에서는 해방기에 발간된 『죽순』을 대상으로 죽순시인구락부와 『죽순』지의 탄생과정, 시 동인지로서 『죽순』이 서 있는 자리와 매체적 전략, 『죽순』 이후 동인들이 전선문단으로 이동해 가는 과정 등을 살펴보았다. 먼저 『죽순』은 이윤수, 이호우, 박목월 등 대구지역 시인들 외에 유치환, 김춘수, 조지훈, 박두진, 설창수, 조향 등 대구 바깥의 유명 시인들도 참가시켜 필진의 위상을 높였다. 『죽순』은 출발부터 좌익 진영과 거리를 두고 출발하였는데, 『죽순』에 수록된 시나 시론을 통해 『죽순』이 크게 순수시나 ‘민족시’의 큰 자장 안에 머무르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죽순』의 경우 순수시를 지향한다는 것 외에 동인들을 묶어줄 뚜렷한 이념이나 모토를 제시하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것이 제한된 필진을 넘어 외부 필진의 자유로운 참여를 보장하게 하는 기능을 하기도 했지만 매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지역 매체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죽순』은 다양한 기획과 편집전략을 구사하였다. 매체전략으로는 첫째, 신인추천제를 실시하여 김요섭, 최계락, 천상병, 윤운강 등의 시인을 등단시켰고, 둘째, 일반 문학지망생과 학생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일반시단과 학생시단란을 설치했으며, 셋째, 지역문인의 표상화 작업을 시도하여 이상화 시비 건립과 상화시비 특집호를 발간했으며, 넷째, 시조에 대한 관심과 시조 발표 지면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켰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편 한국전쟁기로 접어들면서 『죽순』 동인들은 전선매체로 이동해 가는데, 특히 문총구국대 경북지대의 이름으로 나온 『전선시첩』 2집은 『죽순』의 전시판 매체라 할 수 있었다. 죽순시인구락부의 대표였던 이윤수가 『전선시첩』 2집의 발간 주체로 원고 수합, 편집, 「후기」까지 관여한 것은 그러한 사실을 증빙해 준다. 『전선시첩』에 실린 시들은 순수시를 지향했던 시인들이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전선시로 이동해 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키워드

죽순; 죽순시인구락부; 매체 전략; 지역문학; 문학동인지; 대구; 표상; 순수시; 전선시첩; 『Jook-soon(Bamboo shoot)』; Jook-soon poets club; media strategy; regional literature; literary coterie magazine; Daegu; representation; pure poetry; 『Geonseon-sichup』
제목
해방기 시 동인지 『죽순』의 위상과 『전선시첩』으로의 이동
제목 (타언어)
A study on the status and the movement to war media 『Geonseon-sichup』of 『Jook-soon(Bamboo shoot)』, a literary coterie magazine in the Liberation Period
저자
박용찬
DOI
10.16873/tkl.2022..90.143
발행일
2022-04
유형
Y
저널명
한국문학논총
호
90
페이지
143 ~ 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