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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에서는 신라 고유의 독창적인 도상으로 평가받고 있는 수두인신 무장형의 십이지상이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어떻게 수용되고 변용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중국의 경우 중앙아시아와의 교류를 통해 신중상 계통의 호법신 도상은 이미 6세기에 무장화를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중 본고에서는 수두인신형 神王像이 북제시기 갑옷을 입은 무장형으로 등장하는 점과 이들 신왕상이 중심주를 둘러싸듯 하부에 나란히 배치되는 점, 그리고 북향당산 석굴 북동의 조영이 造佛에만 그치지 않고 황실의 능묘로서 의도되었다는 점에서 신라 능묘의 십이지상과 도상, 배치, 기능에 있어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신왕상의 도상적 계보는 이후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확인되지 않지만, 신라에서 7세기 말 사천왕사 신장상과 감은사지 사리기의 사천왕상과 같은 호법신 도상이 무장한 채 표현되었다는 것은 신라 능묘의 십이지상이 무장화된 배경에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다. 원래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무덤을 수호하고 방위를 나타내는 도상이었던 십이지의 성격과 기능은, 신라에 전래된 이후에는 곧 불교의 신중상과 더불어 수호의 역할을 담당하는 도상으로 인식되다가, 8세기경 불교의 호법신이 무장화되는 경향 하에서 동시에 무장형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신라 십이지상의 무장화는 십이지상 본래의 의미와 도상적 계보와 분리되어, 중국의 신왕상을 비롯한 호법 신중상이 무장화되는 경향에 따른 도상적인 변용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의미상 신라의 십이지상이 능묘 주변을 둘러싸고 갑옷을 입은 모습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기존에 지적한 바와 같이 왕릉 수호의 역할이 강조되었다는 점은 여전히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십이지상이 무장을 하고 능묘 밖에 묘사된 이유가 기존의 왕릉 수호의 역할을 충실하게 표현하기 위한 시각적인 장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호법신이 무장화 되는 시대적, 사회적 요인이 보다 직접적인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았다.
키워드
- 제목
- 신라 능묘에 보이는 국제교류 - 獸頭人身 武將形 十二支像을 중심으로
- 제목 (타언어)
- International Exchange in Silla's Royal Mausoleums - Focusing on the Armed Twelve Zodiac Statues Featuring Animal Heads and Human Bodies
- 저자
- 서남영
- 발행일
- 2024-12
- 유형
- Y
- 저널명
- 신라문화
- 권
- 65
- 페이지
- 363 ~ 398
- 언어
- KOR
- 출판사
- 동국대학교 WISE(와이즈)캠퍼스 신라문화연구소
- 발행국가
- 대한민국
- 분량
- 36 페이지
- ISSN
- E 2714-0628
P 1229-0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