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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대구 팔거산성 목간을 재검토해서 신라 지방 지배의 실태에 접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팔거산성 목간은 16점이 발굴되었는데 그중 10점에 글자가 있다. 함안 城山山城 목간과 같은 荷札로 추정되고 또 ‘王私’ ‘(城)下麥’이라는 공통된 용어가 있는 것이 주목되었다. ‘王私’에 대해서는 성산산성 목간의 검토를 통해 왕·왕실 직할지와 관련된 말로 추정한 바 있다. 그 후에 성산산성 목간과 팔거산성 목간에는 ‘王私’ 이외에 ‘私’만 있는 목간이 있고 ‘私屬關係’나 ‘私糧’을 뜻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팔거산성 목간의 판독문을 재검토한 결과 ‘私’만 있다고 주장된 목간은 ‘稻’ 등 다른 글자로 판독된다. 그리고 성산산성 목간과 팔거산성 목간 그리고 김해 良洞山城 목간을 비교한 결과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다. 첫째 간지년 표기의 유무. 팔거산성 목간에서는 10점 중 5점에, 양동산성 하찰 목간 3점 중 적어도 1점에 간지년이 있는데 성산산성 목간에서는 245점 중 1점에만 있다. 둘째 곡물명의 차이. 성산산성 목간 245점 중 물품명이 나오는 목간이 114점인데 그 대부분이 ‘稗’이다. 한편 팔거산성 목간은 ‘麥’ ‘稻’ ‘米’, 양동산성 목간은 ‘麥’만 나오고 ‘稗’가 하나도 없다. 셋째 특이한 記載樣式. 팔거산성 1·16호 목간은 ‘安居礼(利) 干支’라는 외위를 가진 인명 다음에 촌명이 오는 기재양식이다. 이러한 기재양식은 성산산성 목간에 안 보이던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나는 이유로 성산산성 목간과 팔거산성 목간, 양동산성 목간은 같은 하찰 목간이라고 해도 구체적인 용도가 달랐기 때문으로 추측하였다. 성산산성 목간은 산성을 축성할 때 동원된 사람들이 소비한 식량의 하찰로 생각된다. 특히 ‘城下麥’ 목간은 축성이라는 특정 목적을 위해 성에서 곡물이 지출되었을 때의 하찰이었을 것이다. 한편 팔거산성과 양동산성 목간은 성에 곡물을 납부하였을 때의 하찰로 추정된다. 여러 해의 간지년이 보이는 것은 각 해에 납입된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팔거산성 1·16호 [안거리+지명] 목간은 이러한 곡물 납입에 지방 유력자가 책임을 지는 경우가 있었던 것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키워드
- 제목
- 대구 八莒山城 木簡의 재검토 - 신라의 지방지배와 하찰목간
- 제목 (타언어)
- A Review of Wooden Slips from Palgeo Mountain Fortress in Daegu
- 저자
- HASHIMOTO Shigeru
- 발행일
- 2023-08
- 유형
- Y
- 저널명
- 동서인문
- 호
- 22
- 페이지
- 33 ~ 62
- 언어
- KOR
- 출판사
-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 발행국가
- 대한민국
- 분량
- 30 페이지
- ISSN
- P 2288-9612